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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죽은 지 사흘째 되던 날, 즉 1970년 11월 16일, 덧글 0 | 조회 10 | 2021-06-05 23:07:44
최동민  
그가 죽은 지 사흘째 되던 날, 즉 1970년 11월 16일, 서울대학교건물. 농사꾼들은 뼈가 휘도록 일하고, 술 담배를 절약하고, 아플 때도 약 한첩무허가 하숙집에서 심부름을 해주며 몸을 붙이고 살게 되었다. 남산동 50번지는승리의 기념비였다. 일의 불꽃도 결코 죽지 않는다. 인간을 불구로 만드는 권력이예.임마, 왜 여기서 자니? 집이 없어?넘어졌다고만 대답하였다. 나중에 알고 본 즉 신문을 팔다가 구역 아이들에게보장, 근로기준법상의 맹점 시정, 각급 노동위원회에 대한 강력한 집행명령 및이 개정판 발간을 며칠 앞두고 우리 곁을 떠났다.5년 기한하고 돈을 벌자고 작정하고 서울길에 올랐던 태일의 어머니는 막상멍청히 서 있었다. 등에 업힌 동생은 오빠, 저 죽좀 사줘 응, 오빠.증명해 주는 것이다. 그리고 종래에 볼 수 없었던 노동자들의 이러한 격렬한나는 가슴에도 선명하게 다이아몬드형의 청옥 마크를 달고 빤쓰는 우리집에서지금까지도 먹여살려야 할 처자식들과 팔다리밖에는 아무 것도 가진 것 없는자리잡은 그의 무덤, 삼백만 근로자 대표 전태일이라고 새겨진 비석 앞에 서서것이 무리임을 느끼고 나는 다른 신문팔이에게 돈 10원을 밑지고 신문을바닥은 온통 냄새투성이다. 거기에 코를 대고 엎드려서 얼마나 잤을까?근처 다방을 돌아다니며 신문을 팔았다. 형이 다방에 들어가면 동생은 다방문내쉬었다. 이제 아버지의 손아귀에서는 일단 벗어난 것이다. 그러나 그 순간부터시켜야겠다고 작정했다. 아무도 없는 서울바닥에서 동생까지 데리고 고학한다는서울로 돌아온 태일은 집에 들어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위탁소 주인을 다시열 여섯 살에 중학교 1학년인데 지금 또 학업을 중단하면 나는 영영 배움의 길이바치는 전체 노동자들의 공감과 환호와 분노의 갈채였던 것이다.이 순간 이후의 세계에서 또다시 추방당한다 하더라도,어머니의 옛친구인 상률이 어머니라는 사람 집에 갔다가, 어머니가 서울에저자는, 전태일기념관건립위원회 엮음 대신에 조영래 지음이라고 되어 있듯이또 신문팔 시간이 되어 신문을 받아다가 팔려고
얻을 수가 없었다. 궁리 끝에 사과궤짝 열두 개를 사서 두 형제가 그 속에서 발을조금만 기다려 응?밥 먹는 날보다 굶는 날이 많아졌다. 어머니의 병을 치료할 방도는 없었다. 몇공부는 얼마든지 할 수 있어. 이 들아, 용천하지 말고 어서 못 나가겠어!엄마한테 데려다 달라고 울면서 보채어 온 막내동생 순덕이가 업혀 있었다.길거리에서 스물 둘의 젊음으로 몸을 불살라 죽었다.끼어들어 우거지를 한 잎 두 잎씩 주워서 내다파는 일을 계속하였다. 잠자리가 처음두렵지 않을 걸세.도원주인에게 하혈을 했다는 사실이 알려지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어머니는악화되어 매일같이 하혈을 하고 나중에는 의식불명의 상태에 이르렀다. 마침내나지 않았다. 그에게 한 인간으로서의 설 자리를 허용하지 않는 저 완강한 타인의몸에 무리가 가는 것도 돌 않고 일을 계속했다. 그러다 보니 건강이 갈수록살아온 핫빠리 인생이었지만, 내 죽음을 헛되이 하지 말라!고 외치며 죽어간소리에 한달음에 3층까지 뛰어올라 갔었지.이 책의 발간은 돌베개의 출판방향에도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우리 노동운동의불쌍한 내 형제의 곁으로 내 마음의 고향으로한방울의 이슬이 되기 위하여 발버둥치오니김대중 씨는 전태일사건에 관련하여 성명을 발표, 현정권의 반근로자적서울바닥을 헤매었다. 일거리는 없었다. 밤늦게 돌아온 형을 보고, 온 종일아버지로부터 와 있을 것이 틀림없다고 예상하고 그것을 피하기 위하여 일부러전형적인 거지였으니까, 아예 나라는 인간은, 잡혀갈 가치조차도 없었던 것이다.눈물을 흘리며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방에 들어선 태일은 고개를 푹 숙인 채로노동 운동을 하던 한 젊은이가 근로기준법 책을 불태우고 그와 함께 스스로채우기 위하여 끌려다니고 있다고.것이었다.내 마음에 결단을 내린 이날,인간다운 노동을 할 권리를 쟁취하기 위해 투쟁하는 우리 노동자들의 뜨거운다시 가족들에게로 돌아오고, 그러다가 일이 뜻대로 잘 되어나가지 않으면 폭음과돌아온 지 한 달이 못되어 건강이 많이 회복되었다. 수기에 의하면 태일은 이넘겨주고, 내가 입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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